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저는 영어 논문 교정비의 무게를 실감했습니다. 지도교수님께서는 “품질 좋은 교정 회사를 써야 학회 리뷰어가 덜 까다롭다”고 누차 강조하셨지만, 메이저 업체의 1만 단어 패키지는 제 생활비 두 달치에 맞먹었습니다. 고통스러운 환율 탓에 마감이 가까워질수록 견적서는 점점 비현실적인 숫자를 띄웠고, 저는 교정 지출을 줄일 비상책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SNS 광고를 무심히 스크롤하던 어느 새벽, “학술연구자 전용 평생 교정 패스 89% 할인”이라는 큼직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평생권이라면 단발성 논문뿐 아니라 앞으로 쓸 학회 초록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서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습니다.
할인율보다 이상했던 회사 연혁
첫눈에 보인 업체 이름은 ‘EditNow Global’이었습니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는 네이티브 박사·석사 편집자 500명, 24시간 내 수정 완수라는 화려한 구호가 강조돼 있었습니다. 문제는 회사 소개 탭이 비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설립 연도도, 대표자 이름도, 심지어 고객센터 주소조차 없었습니다. 대신 “국제 특허 준비 중이라 정보를 비공개”라는 안내 문장이 단 한 줄 들어 있었는데, 고객 신뢰를 위한 연혁을 특허 이유로 감추는 방식을 처음 보았습니다. 더불어 ‘ISO인증’ 로고가 박혀 있었지만 클릭해도 어떤 인증 기관으로도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의심이 고개를 들었지만, 89%라는 숫자가 생각보다 큰 마력을 발휘했습니다. 저는 “신생 스타트업이라 사이트 디자인이 미완성일 수도 있다”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구매하기’ 버튼을 눌러 보았습니다.
결제 단계가 던진 또 다른 의문
버튼을 누르자 별다른 회원 가입 절차 없이 바로 결제창이 떴습니다. 카드, 페이팔, 은행 송금 세 가지 선택지가 보였고, 카드 결제를 고르자마자 “현재 카드 모듈 점검 중입니다”라는 팝업이 튀어나왔습니다. 대신 화면 중앙에는 ‘은행 송금 시 수수료 5% 추가 할인’ 배지가 번쩍이며 시선을 끌었습니다. 송금 계좌는 해외은행 SWIFT 코드가 아닌 국내 시중은행 개인 통장이었고, 예금주는 회사명과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차분히 “사업자 통장인가요?”라고 라이브 챗에 물었더니 상담원은 “개발 법인전환 절차 중이라 임시 계좌만 운용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동시에 오른쪽 하단엔 실시간 알림처럼 “평생권 구매 완료” 메시지가 빠른 템포로 줄줄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알림 속 이름이 ‘kim****’, ‘lee****’처럼 규칙적이었고, 시간도 58초 간격으로 일정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A/B 테스트용 더미 데이터가 아닐까 의심했지만, 할인 종료 타이머가 12분 남았다는 숫자가 다시 손가락을 재촉했습니다.
익숙한 패턴을 비춘 검색 결과
사실 얼마 전 지도연구실 선배가 학술 자료 번역 서비스 사기를 당한 적이 있어, 저는 최종 결제 전 습관처럼 회사를 검색해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번에도 동일한 절차를 밟았습니다. 먼저 브라우저를 새로 열어 ‘EditNow Global scam’을 검색했으나 영문 결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한국어 키워드로 돌려 보니, 블로그 한 편이 ‘신생 교정 업체 주의’라는 제목으로 사이트 스크린샷을 공개하고 있었습니다. 글을 끝까지 내려 보니, 리뷰 패턴이 일정하고 라이브 챗에서 똑같은 임시 계좌 설명이 이어졌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문득 싸한 기분이 몰려왔습니다.
사실관계를 더 확실히 하려고 저는 피해 정보 커뮤니티인 먹튀위크에도 업체 이름을 입력해 보았습니다. 검색 결과 첫 줄에 최근 3일 동안 올라온 신고 두 건이 뜨더군요. 그중 한 분은 “입금 후 48시간이 지나도 교정 담당자가 배정되지 않았고, 이후 사이트가 로그인을 막았다”는 피해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계좌번호 마지막 네 자리가 제 결제창의 그것과 일치했습니다. 이 한 줄이 결정타가 되어, 저는 타이머가 7분 남았음에도 미련 없이 브라우저 탭을 닫았습니다.
텅 빈 소개 페이지의 의미
제가 주저앉은 카페 구석에서 심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소개 페이지’ 공백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설립 연혁과 대표자 이름이 없는 회사는 결국 책임 소재를 숨기려는 의도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비록 저렴한 가격과 무제한이라는 단어가 그럴듯해 보여도, 익명 계좌에 돈을 보내는 순간 교정은커녕 카드 정보까지 탈취당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아쉬움은 컸지만, 교정비를 아끼려다 학비 전체를 날리는 재앙만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결제 포기를 넘어 신고로
집으로 돌아와 저는 스크린샷들과 라이브 챗 대화 내역을 정리해서 소비자보호원 전자상거래 피해 신고 창구에 제출했습니다. 또한 학교 행정실에도 “유사 사기 사례가 있으니 연구비 집행 시 주의해 달라”는 메일을 돌렸습니다. 며칠 뒤 소비자보호원으로부터 “해당 사이트는 국내 통신판매업 신고 이력이 없어 차단을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연구실 후배 몇 명이 같은 광고를 보고 문의하려다, 제 경험담 덕분에 위험을 피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되돌아보며 세운 다섯 가지 기준
- 시세보다 70% 이상 저렴하면 우선 기업 실체부터 확인하겠습니다.
- 소개 페이지가 비어 있거나 특허 핑계로 정보를 숨기면 거래를 중지하겠습니다.
- 카드 결제를 막고 개인 계좌 송금을 유도하는 구조라면 즉시 창을 닫겠습니다.
- 실시간 구매 알림과 타이머가 동시에 등장하면 심호흡부터 하겠습니다.
- 최종 클릭 전 먹튀위크에서 회사명 혹은 계좌번호를 검색하겠습니다.
이 다섯 줄을 노트 앱 첫 페이지에 적어 두니, 할인을 앞세운 광고 배너가 다소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학술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온라인 거래에서도 검증된 정보만이 저를 지켜 줄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비록 이번 평생권은 놓쳤지만, 덕분에 제 연구비와 카드 정보가 안전하다는 안도감이 훨씬 값지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누군가가 비슷한 유혹에 흔들릴 때, 저는 먹튀위크 경험담과 함께 이 다섯 가지 기준을 건네며 “교정비보다 연구 데이터가 더 비싸다”는 말을 잊지 않고 전할 것입니다.